쇼윈도우의 바비 인형 ― 베네수엘라 전쟁 앞에 전시된 한국 언론

미국 장난감 가게의 쇼윈도우에 놓인 바비 인형은 언제나 단정하다. 흠집 없는 얼굴, 상황과 무관한 미소, 주변의 폭력이나 혼란과는 무관한 정적인 아름다움. 지금 베네수엘라 침공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 체포·압송 사태를 대하는 한국 언론의 모습은, 정확히 그 쇼윈도우 속 바비 인형을 닮아 있다. 현실은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음에도, 언론은 말끔한 외양을 유지한 채 아무 일도 없는 듯 서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미국 정부가 “미국에 비판적인 자는 입국을 금지한다”고 선언한 이후 벌어진 첫 번째 전쟁이다. 그 선언은 정책이기 이전에 분위기 조성이었다. 비판은 차단되고, 침묵은 안전해진 것이다. 그 직후 발생한 군사 침공과 타국의 국가원수 체포라는 중대 사건 앞에서, 한국 언론이 일제히 무표정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이 바비 인형이 됐기 때문이다. 바비 인형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진열되는 위치와 각도만이 조정될 뿐이다.

사실 그 이전부터도 한국 언론의 대미 보도는 오랫동안 카피 구조를 유지해 왔다. 미국의 공식 발표, 미국 언론의 논조, 워싱턴의 시선이 곧 ‘객관성’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카피머신 구조 속에서 미국의 행위를 문제 삼는 질문은 불필요한 돌출로 간주된다. 그래서 침공은 ‘무력 사용’이 아니라 ‘작전’이 되고, 체포는 ‘불법 연행’이 아니라 ‘법 집행’으로 매끈하게 포장된다. 쇼윈도우에 어울리지 않는 흠집은 사전에 제거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강압이 아니라 자기 조율이다. 누군가 보도하지 말라고 지시하지 않아도, 언론은 이미 어떤 표정이 허용되는지를 알고 있다. 너무 찡그린 얼굴은 진열대에서 내려온다. 너무 날 선 질문은 ‘균형을 해친다’는 이유로 정리된다. 그리고 이 기조를 유지해야 미국에 입국할 수 있는 혜택을 유지할 수 있으니, 이제 한국 언론의 방향성은 감시자가 아니라 언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전시물이다. 날카로운 비판은 사라지고, 잘 빗겨진 머리결의 바비 인형만 남은 것이다.

이러한 침묵의 전시 효과는 국제 질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주권국가에 대한 군사 침공과 현직 국가원수 부부의 국외 압송은, 총칼에 의한 막가파식 정의 구현 시대가 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이를 논쟁의 대상으로 끌어올리지 않는다. 대신 외신 인용과 발언 전달로 표면을 정리한다. 쇼윈도우는 늘 깨끗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일방적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이 거론되는 장면은 아이러니를 넘어 비극에 가깝다. 이는 중국의 체제가 이상적이어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국가가 규범을 이탈했을 때 이를 제어할 다른 수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행동을 비판할 자유 언론이 기능을 멈춘 공간에서, 그 대안으로 중국이 보이는 것은 이제 세계가 중국을 의지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중국이라는 존재가 '1월의 순간'에 균형의 언어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바비 인형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 꺼내어 만져주길 기다린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미국의 초이스를 두려워 해 언제까지나 쇼위도우에 있기를 바라게 될 수도 있다. 질문하지 않는 언론은 박제된 자유와 같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느때 자기 파괴로 이어진다. 유일하게 바비 인형과 다른 점이다.